(사)한국건설안전학회회장 / 국립군산대학교 교수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지만,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사망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 등 산업안전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여,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유지·증진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법’이 28년 만에 전면 개정되었다.
우리나라 산업안전의 현 실태를 돌아보고, 한국가스기술공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전문가의 고견을 들어본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는
‘사고사회’, 대한민국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피터 디아만디스1)의 6Ds2)처럼 디지털 변혁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기술 문명이 발전에 따른 혜택의 크기만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위험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야 하는 위험사회로 불리고 있습니다. 위험사회란 고도로 완벽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의 복잡성으로 인하여 정상적인 경영관리 활동으로는 피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사고 대부분은 기초적인 안전조치를 소홀히 하여 발생한 사고로서 학자들은 우리나라를 ‘위험사회’보다 차원이 훨씬 낮아서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사고사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라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망사고에 이어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 사망사고는 시민을 분노케 했습니다. 그리고 연이은 안전사고는 국회에 계류 중인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팬데믹 코로나-19 선방은 국격을 높였지만, 최근 38명이 사망한 이천물류창고 화재사고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안전에서는 아직 후진국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더 뼈아픈 사실은 이번 사고가 이 지역에서 2008년도에 발생하여 40명이 사망한 사고의 재현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고로부터 제대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이지요.
1) 피터 디아만디스(Peter Diamandis)
세계 최대 비영리 벤처 재단인 엑스프라이즈 재단(XPRIZE Foundation)과 혁신 창업가 양성 전문 대학인 싱귤래리티 대학(Singularity University)의 설립자. 미국 실리콘밸리 내 혁신 기업가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하나다.
2) 6Ds
피터 디아만디스가 저술한 《볼드(BOLD), 새로운 풍요의 시대가 온다》 나온 개념이다. 조직의 기하급수적 성장을 6단계(6D)로 설명하고, 기하급수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6단계(6D)는 디지털화(Digitalization), 잠복기(Deceptive), 파괴적 혁신(Disruptive), 무료화(Demonetization), 소멸화(Dematerialization), 대중화(Democratization) 순이다.
국가경영 패러다임의 전환에 따른
한국가스기술공사가 나아가야 할 방향
국정기조가 효율성만 중요시하는 양에서 질로 국가경영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작되었습니다. 세월호의 상처를 안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민생명지키기를 국정목표로 국민의 안전에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어느 정부보다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 진력하고 있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정부에서는 공공기관부터 안전을 강화해 나가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의 안전책무를 하수급자의 안전을 포괄하고, 경영진에 대한 문책 강화, 안전등급제 도입, 기관경영평가에 안전성과의 핵심 항목화 등으로 안전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경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가스기술공사는 안전관리중점기관 중의 하나로서,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ISO45001로 전환하였으며, 기능연속성계획(COOP) 등을 추진하여 안전과 방재의 우수기관으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기대만큼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천화재사고와 같이 건설현장의 안전확보에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어 국회에서는 건설안전특별법을 준비 중입니다.
사고예방은 구성원 모두의 역할로서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역할을 충실하게 실천하여야 달성이 가능합니다. 안전은 인사, 구매, 정비, 플랜트 등 모든 부서의 일입니다. 안전품질처는 일선 부서를 지원하고 감사하는 참모 역할에 머뭅니다. 구성원 모두가 ‘깨진 유리창의 법칙’에서와 같이 사소한 기준위반, 실수, 아차사고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4차산업의 각종 신기술들은 사고예방 조치의 효율성과 효과성을 높일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으나, 정보화 기술 자체에 내재한 위험도 있으므로 과도한 의존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고 수준의 안전은 문화입니다. 안전의 수준을 네 단계로 구분하면, 무의식적 무능, 의식적 무능, 의식적 유능과 무의식적 유능의 차원이 있습니다. 여기서 문화는 의식하지 못하는 유능한 상태로서 안전의 추구가 습관화된 상태를 말합니다. 최근까지 큰 진전이 있었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는 진정한 초일류기관으로 거듭나는 데는 아직도 다른 차원의 많은 노력이 필요함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한국가스기술공사는 고도의 위험물인 가스가 주 사업 대상으로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엄격한 환경에 놓여있습니다. 따라서 법적 기준의 준수는 기본이지만 법적 기준만 준수하면 안전해질 수 있다고 착각하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아가서 안전의 모범기관을 지향한다면 준수를 넘어서는(beyond compliance) 목표로 한국가스기술공사만의 안전문화를 구축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안전은 자타불이(自他不二)의
마음가짐
3) 자타불이(自他不二)
‘나와 남은 별개가 아닌 하나’라는 뜻.
저는 안전은 자타불이(自他不二)3)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은 가치관으로 드러난 태도에서 출발하여 시스템을 거쳐 습관으로 형성됩니다.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먼저 내가 나를 해치는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내가 하는 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고도로 복잡한 구조 속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타인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도 안전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조직과 개인에게는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기 위하여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등 새로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으로서 우리 공사는 이러한 안전책무가 더욱 엄중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번 호를 계기로 다음 두 가지 질문으로 여러분의 안전의식 수준을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나는 어느 정도의 비정상 상태를 ‘사고’라고 생각하는가? 인명이나 재산의 손실이 발생해서가 아니라 안전수칙을 위반한 것 자체를 ‘사고’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내가 생각하는 ‘안전’이란 무엇입니까? ‘안전’이란 무엇이 우리를 해칠 수 있는지를 알고, 이러한 위험을 통제하는 방법을 학습하여 안전한 방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안전은 명사나 형용사가 아니고 동사입니다. 안전을 단순하게 위험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한다면 아직 안전의식에 개선의 여지가 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안전수준의 향상을 통한 안전문화의 진흥은 현재의 상태가 불완전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안전의식의 수준이 낮으면 위험요소를 간과하여 시정할 노력의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현재 안전수준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진정한 개선의 노력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하여 우리는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으며,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행복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안전은 다른 무엇과도 절대 타협될 수 없는 필수조건이며, 쾌적, 편안, 안심이기에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한국가스기술공사의 주된 사명은 위험한 가스를 시민이 안전하게 사용하게 하는 것입니다. 안전은 모두의 일로서, 실천에는 임원진, 직원, 협력사, 고객 등의 구분이 없습니다. 단지 역할이 다를 뿐이지요.
자타불이(自他不二), 당신의 생명이 나의 생명입니다. 생명은 하나이며 우리도 하나임을 항상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자타불이(自他不二)
‘나와 남은 별개가 아닌 하나’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