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뒤, 우리 일상은 크고 작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우리 일상 속에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 삶을 채우던 것들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 그 자리를 다른 것들이 대체하고 있다. 생활 양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문화가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것들의 가치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주 가던 카페가 문을 닫고, 회사에서 점심마다 신세를 지던 도시락 가게는 개인 사정으로 쉰다는 팻말을 달아놓았다. 회사에서도 마스크를 벗지 못한다. 어디를 가도 방문 일지를 적어야 하고, 어쩌다가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되면 눈치가 보인다. 그전까지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이제는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 되었다.
1달이 지나면 괜찮겠지, 3개월이 지나면 괜찮겠지 하던 것이 어느새 1년이 훌쩍 넘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 다닐 때가 엄청 오래된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확진자가 줄어들어 ‘그만 멈추려나’ 싶으면 재난 문자가 울린다. 벌써 1년도 넘은 이야기. 그래서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변했을까?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이유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나서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을 꼽아본다면, 단연 여행이 1순위 일 것이다. 실제 한국관광공사의 2020년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전에는 연평균 6번의 여행을 계획하던 사람들이 코로나19 확산 이후에는 1.8회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국내 여행을 계획했던 사람들 중 84.9%가 실제로 여행을 취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행의 성격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누구와 가느냐’다. 가족이나 친구, 연인 등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어디로, 어떤 여행을 떠날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코로나19가 끝나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의 일상을 가장 많이 공유하고 있는 가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어쩌면 ‘나’를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위해서 떠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상 속에 쌓인 피로는 우리의 모습을 바꾸어 놓는다. 다른 때라면 웃으며 넘겼을 일도 예민하게 반응하도록 만든다. 익숙하고 편한 사람일수록 더 잘해야 하건만, 더 짜증을 부리게 된다. 종일 얼굴을 마주하는 직장 동료나,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같이하는 가족들에게 한 껏 예민하게 굴고 나면 왜 그랬나 싶어 후회할 때도 많다.
그래서 여행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관계’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여행은 일상이라는 쳇바퀴 속에 쌓인 몸과 마음의 피로를 덜어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며, 혹은 나 자신을 돌보며 휴식을 취한다. 휴식을 취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일상 속의 관계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변화하는 여행의 모습
여행의 모습 자체도 바뀌었다. 여행지에서 볼거리를 즐기며 맛집을 찾아다니던 이전과는 달리 호텔 방에서 하루를 즐기는 ‘호캉스’가 유행하기도 했다. 또 여행지에서 숙소를 예약하지 않고 탁 트인 공간에서 음식을 먹으며 즐기는 캠핑이 유행이다. 경치가 좋은 곳에 차를 세워놓고 여행을 즐기다 차에서 숙박을 해결하는 차박도 마찬가지.
이런 독특한 형태의 여행들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다른 사람과 불필요한 접촉이 없다는 점이다. 이전까지의 여행은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의 여행은 다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한다. 언제 어디에서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개인적이고 위생적인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도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통과 연결을 원한다. 그 모습이 바뀌었을 뿐이다. 전에는 여행지에서 함께하며 추억과 감정을 공유했다면, 이제는 다녀온 여행지를 SNS에 올려 추억과 감정을 공유한다. 꼭 여행지에 가지 않아도, ‘방구석 여행’을 즐길 수도 있다. 유튜버가 올린 ‘여행 V-log’를 즐기거나,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속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찾기도 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동영상과 댓글을 통해 경험과 감정을 공유한다.
그래도, 여행
여행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여행은 익숙한 곳에서 떠나 새로운 것을 보고, 먹고,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와 마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때, 몸과 마음의 피로와 스트레스에 휩싸이지 않고 그들을 진심을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행은 익숙함의 가치를 보게 해준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던가. 새로운 것이 지속되면 그것 또한 익숙해진다. 그리고 익숙함이라는 것의 가치를 알게 된다. 그래서 여행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상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 알 수 있는 기회다. 익숙함과 새로움, 그 둘은 모두 소중한 것이기에, 여행이라는 행위는 우리 삶속에 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