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서둘러 도착한 광주. 벌써 여름 향기가 가득한 광주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광주호 호수생태원이다. 광주호를 둘러 전망대, 식물원과 함께 버들길, 풀피리길, 별뫼길, 가물치길, 돌밑길, 노을길 등 6개의 산책로로 구성된 호수생태원. 6월에 찾은 호수생태원은 그야말로 푸른 빛으로 가득했다.
생태원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묵묵하게 앞서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며 걷는 아내, 아무것도 모른 채 누나의 손을 잡고 풀밭을 걸어가는 꼬마, 아무 말 없이 걷지만 분명 함께 걷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도 보인다. 발걸음을 서두르는 사람은 없다. 바빠 보이는 사람도 없다. 아마도 생태원에서의 기억이 오래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무등산 원효사
곳곳에 핀 꽃과 저 멀리 펼쳐진 광주호의 모습을 만끽하다 문득 숲의 냄새가 생각나 무등산으로 향했다. 원효대사가 그 모습을 사랑해 머무르며 수행했다는 무등산에는 그 이름을 딴 원효사가 자리 잡고 있다. 더운 햇빛이 싫어 산에 오를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원효사까지 도로가 이어져 있어 가슴을 쓸어내렸다.
원효사에는 등산객이 무등산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나무의 촉촉하고 서늘한 느낌을 느끼며 바라보는 무등산의 절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원효가 왜 이곳의 모습을 사랑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더없이 맑은 날에 무등산을 찾은 것이 다행이라고 느끼며, 무등산의 경치를 눈에 담았다.
이대로 돌아가기 아쉬워 광주 시내를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광주 곳곳에 세워진 독특한 건축물인 폴리(Folly)를 발견했다. ‘본래의 기능을 잃고 장식적인 역할을 하는 건축물’을 뜻하는 폴리이지만, 광주 도심의 폴리들은 도심을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었다.
광주는 지난 1995년부터 광주 비엔날레를 처음으로 개최한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현대설치미술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더불어 2011년에는 디자인 비엔날레 활동의 일환으로 ‘광주폴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4번의 프로젝트를 통해 광주의 도심을 색다름으로 물들였다.
소통의 오두막
가장 먼저 발견한 폴리는 스페인의 작가 후안 헤레로스가 구상한 동구 장동 로터리의 ‘소통의 오두막’이다. 소쇄원과 한옥의 굴뚝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이 작품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넘나들며 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소통의 오두막’이라는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만남의 광장’이다. 사실 소통의 오두막이 설치된 로터리나 만남의 광장은 그 공간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공간에 그것이 있음으로써 만남과 소통을 위한 장소가 된다. 나름대로 그 이름의 의미를 생각해보며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히다가, 또 다시 길을 나섰다.
광주사랑방
다음으로 발견한 폴리는 문화전당역 가까이에 있는 ‘광주사랑방’이었다. 미국의 작가 프란시스코 사닌이 구상한 광주사랑방은 시민들의 쉼터이자 버스 정류장의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꽤나 실용적인 목적을 가진 폴리다.
‘광주사랑방’이라는 이름을 듣기 전까지 일부러 설명을 찾아보지 않고 그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시멘트로 채워져 있는 계단에 앉아 벽을 바라보니 왠지 그곳에 거울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광주사랑방이라는 이름을 듣고 나니, 회색 시멘트로 채워져 있는 폴리가 어딘가 따듯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간 미용실에서 사탕을 한가득 입에 물고 아주머니와 수다를 떠는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서인 것 같다.
광주천 독서실
앞의 두 폴리를 감상하며 아쉬움을 달래다 마지막으로 찾은 ‘광주천 독서실’. 야구장이 보이는 광주천에 위치한 이곳은 가나의 건축가 데이비드 아자예와 미국의 소설가 타이에 셀라시가 공동으로 참여해 구상한 인문학적인 공간이다.
푸른 빛으로 가득한 광주천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번 여행으로 광주라는 도시에 대해 조금 더 깊게 알게 된 것 같았다. 광주에서의 여행을 되짚어보며 광주천 독서실에 걸터앉으니 마치 오늘 하루 열심히 공부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하는 고등학생이 된 기분이었다.
오늘의 여행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며, 광주를 뒤로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을 옮겼다.